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 생사의 갈림길에 처했을 때, 자신의 마지막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입니다.
민법상 자필증서, 비밀증서, 녹음, 공정증서 유언의 방식이 있지만, 이러한 보통의 방식을 사용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활용 수 있습니다. 다만,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역시 통상의 유언 방식 못지않게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준수해야만 비로소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성하는지, 그리고 법적으로 유효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정의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질병 등 급박한 사유로 인해 자필증서유언, 비밀증서유언, 녹음유언, 공정증서유언의 방식으로 유언을 할 수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언 방식을 말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유언자가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참여시켜 한 명에게 유언을 받아 적게 하고, 각자 서명하거나 날인한 후, 급박한 사유가 종료된 날(통상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해야 비로소 유언으로서 유효하다는 점이 다른 유언방식과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2. 구수증서 유언의 유효 요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법적으로 유효하려면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 질병 또는 기타 급박한 사유로 다른 유언 방식을 사용할 수 없을 것 : "기타 급박한 사유"란 유언자가 부상을 당하거나 전염병 때문에 교통이 차단된 장소에 있거나 조난을 당한 경우처럼, 일반적인 유언 방식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및 비밀증서의 방식에 의한 유언이 객관적으로 가능한 경우에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였다면 이는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참여할 것 : 유언자는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참여시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해야 합니다. 유언 취지의 구수란 유언의 내용을 말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다57800 판결
" 유언당시에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언자가 증인으로 참여하여 유언 취지의 확인을 구하는 변호사의 질문에 대하여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 "어"라고 말한 것만으로는 민법 제10170조가 정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 구수를 받은 자가 이를 필기하고 낭독할 것 : 구수를 받은 증인은 유언자의 의사를 정확히 필기한 후, 유언자와 다른 증인 앞에서 이를 낭독하여 그 정확함을 승인받아야 합니다.
필기는 유언자의 의사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어야 하지만, 필기한 문언의 뜻이 구수의 취지에 합치하면 되며, 반드시 구수 그대로일 필요가 없습니다.
낭독은 유언자와 참여한 다른 증인에게 필기가 정확함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므로,필기를 한 증인은 유언의 전부를 낭독하여야 합니다
- 유언자와 증인의 서명 날인 : 유언자와 증인은 유언자의 의사가 필기된 유언서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해야 합니다.
서명 또는 기명날인은 필기가 정확함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낭독과 승인이 문제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낭독과 승인의 사실을 반드시 유언서 자체에 기재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명 또는 기명날인이라 하였으므로, 서명만 해도 좋고 기명날인을 해도 괜찮습니다.
서명은 자신이 하여야 하며, 타인의 대필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명날인은 반드시 본인이 할 필요는 없으며, 날인이 무인(지장)이라도 무방합니다.
유언자 서명 이후 유언자가 바로 사망하여, 증인 서명은 유언자 사망 이후 이루어진 경우에 대하여 일본 판결은 유언의 효력을 부인한 경우가 있으나, 사망직후 증인 서명이 이루어진 경우라면 유언으로서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할 것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증인 또는 이해관계인이 급박한 사유가 종료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해야 합니다.
유의할 점은, 검인은 유언서의 형식과 내용을 확인하고 그 위조 및 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검증 절차에 불과할 뿐, 유언의 법적 효력을 담보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따라서, 구수 증서에 대하여 유언 검인 절차를 적법하게 거쳤다고 하더라도 무효로 볼 만한 사정이 있다면 유언무효확인의 소를 통해 유언의 효력을 다툴 수는 있습니다
3. 구수증서 유언 요건 인정과 관련된 판례 태도의 변화
과거에는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다른 유언 방식과 실질이 다르므로 유언 요건을 완화하여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판례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06년 판결에서는 다른 유언 방식과 동일하게 법에서 정한 유언의 방식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유효하지 않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따라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경우에도, 법에서 정한 요건 a) 급박한 사유의 존재, b) 2인 이상 증인의 참여 및 구수, c) 필기, d) 낭독, e) 승인, f) 유언자 및 증인들 서명 또는 기명날인, g) 7일 이내 법원 검인 신청 등 모든 요건을 정확하게 충족해야만 유언으로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다57899 판결)
4. 피성년후견인의 구수증서 유언의 경우, 의사 동석 필요?
피성년후견인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는 경우, 구수증서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질병 등으로 유언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어 다른 유언방식을 선택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급박한 상황) 임을 고려하면, 의사 동석과 의사능력 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이므로, 의사가 심신 회복 상태를 유언 증서에 부기하고 서명날인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해석합니다. 다만, 이러한 피성년후견인의 구수증서 유언에 대하여는, 설사 검인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해당 유언이 유언자의 정상적인 의사에 기초한 것인지에 대한 법적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5. 마무리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급박한 상황에서 유언자의 의사를 남길 수 있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유언으로서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아무 준비 없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유언자 앞에서 이러한 법상 요건을 정확히 따지면서 적법한 유언서를 작성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전에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여 충분한 준비 후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 글을 통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소중한 권리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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